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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운명

정구화 0 408 0

고귀한 운명


             / 門下



오늘 행선지는 어딜까

뒹굴뒹굴하던

안내견이 봄 내음을 맡는다


절대복종이란

각인된 사명을 가짐으로써

들판을 뛰어다닐 수 없음에

자유롭게 노니는 친구들을 보면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


심도 깊은 책임감에

한 눈 팔 수도 매달려서도 안되는

눈이 멀어야 바뀌는 운명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지 못하는 안내견은 외롭다

제자리에 머문 등대처럼 쓸쓸하다


돌아서 갈까 넘어서갈까

오로지 맹인의 눈이 되어

낯선 곳이든 아니든

외로움을 느낄새도 없이

등대처럼 환한 빛이 돼야 한다


늘 착한 일만 하고

묵언수행을 해야하는 안내견은

오늘도 맹인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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