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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는 꿈틀대야 벌레다

정구화 0 329 0

벌레는 꿈틀대야 벌레다


/ 門下


나는 필시 밑빠진 독을 품고 있는 게다

집어넣으면 닳는 것인지 삭는 것인지

때마다 줄어들다 못해 어느 시점이 되면

텅 빈 공간 좀 메꿔달라 조르니 말이다


공붓벌레는 글씨들을 파먹고

화가는 화선지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데

할아버지께서는 한번 살다가는 一生

一百 番을 고쳐서 가셨음에도

一片丹心의 매듭은 결코 풀지 않으셨다


티는 옥이 될 수 없음을 아는 요즘

귀를 막는 건지 눈을 못 뜨게 가리는 건지

풀어놓은 강아지 입만 봉하면 될 것을

내 生이 아니라고 성대는 싹둑 잘라놓고

개과천선은 뭣하러 외치는지 모를 일이다


죽어서 넋이 있다 없다를 가리기 전에

잿더미에서 사리가 나오던 안 나오던

필연에 대해 간과할 일은 아닐성싶은데,

구겨진 체면에도 꽃 피는 봄날은 온단다


마이크가 고장 나 노래를 못 부르겠다

붓이 맘에 들지 않아 걸작이 만화 같다나,

개천 물고기는 헤엄을 잘 쳐야 물고기요

벌레는 어디서나 꿈틀대야 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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