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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정종명 0 200 0

벌초


                           고송 정종명



쪽빛 하늘 가득 뭉게구름

소풍을 가는지 유유히 흐르고


여름 내내 잣은 비에 억새풀이

초목을 이룬 선대 산소


아버님 먼 일가에 양자들어

어언 칠십 년 세월


조상 뫼 벌초 너들이 나는 후손들


없는 집에 한해 제사만 열두 번 이란 우스갯소리처럼

대대로 양자로 이어온 가문 묘가 양손가락이 꽉 찬다


명당 찾아 이산 저산

멀고도 험한 길

묘역은 넓고 땅이 기름져

삼밭처럼 키를 키운 잡초 

낫으론 엄두도 못 낼 

이젠 힘에 부친다


온종일 풀과의 사투

혹독한 전투를 치르는 예초기

산천에 굉음을 울리며 깎아낸 봉분 

막 삭발한 동자승 머리처럼

매끈한 모습에 흘린 땀의 보람과

승자의 희열을 느끼며

다른 산소로 향하는 발걸음 무겁다


벌초 

몇 년이나 더 할까 

내가 할 수 없을 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무덤들


힘닿을 그날이 멀잖다

막걸리 한잔 올리는 마음이 짠하다.


2020.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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