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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자

김미숙(려송) 2 934 0

#수필







어릴 때부터도 무지 겨울을 좋아하고

겨울에 태어난 아이였다.


요즘 코로나19로 전파가 된

열방 센터가 있는 청정지역인

내 고향 상주에서 조금 떨어진 화서가

안타깝게도 연일 뉴스에 떠오르고

나와 지인이신 시인이시면서 화가이시고

성악가이신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도 확진자가

되시어 다행히 잘 치료를 받으시고 퇴원하셨다.

어서 종식되기를 빌면서

어린 시절을 장황히 떠올려 본다.


내가 화서 파출소 관사에서

살았던 다섯 살 때 여름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며

추운 겨울에도 가까이 있던 냇가에서

썰매를 태워주셔서 놀았었던 기억과

아버지께서

동잠 자는 개구리를 잡아 구워주셨는데

하얀 살이 고소하니 참 맛있었던

기억은 또렷하다.

여섯 살 때 중동 소재지 관할 파출소로

이동하시고 우리 가족은 또 그곳 관사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말도 아직 어둔한 일곱 살인 나를

아버지께서 그 당시 국민(초등) 학교에

입학을 하루 늦게 부랴부랴 시키셨다.

말을 빨리 깨우치는 게 좋겠다

시며 갑자기 보내신 것이었다. 

알고 보니 분교였던 그 학교는

커다란 창고 같은 강당에서

우릴 맞아 주었고 담임선생님은

어린 눈에도 참 고우신 처녀 선생님이셨다.

학생들도 많았다.

나하고는 거의 나이 차이도 있던

친구들은 체격도 좋았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어려

선생님께서 무척 이뻐해 주셨는지 

댁에도 놀러 가면 무용도 가르쳐 주시고

공부도 봐주시곤 하셔서

학교생활도 재미나게 다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네모난 노란

옥수수빵과 따듯한 우유를 간식으로

주시기도 하셨는데

성이 '한'씨였다는 선생님의 얼굴은

그 김에 어리듯 기억이 희미하여 아쉽지만

구수한 그 빵 맛과

공기놀이도 가르쳐 주신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공기만큼은 왼손잡이인 내가

신통하다 시던 소중한 추억 놀이였다.

참으로 감사한 은사이셨다.


신기한 것은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래서 '똥글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나와 늘 같이 놀았고 아버지께서

그 친구 아버지와도 친해지셨다.

고향으로 이사 오고 우리 가족은

택시를 타고 함창 외갓집을 가다가

공검 기찻길 건널목에서 사고를 크게

당할 뻔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님이 그 친구 아버지셨다.

여고를 들어가고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통성명을 하다보니 같은 중동에

살았다는 말에 혹여 그 친구가 아닌가고

별명만 기억이 나서 물으니

맞는다는 게 아닌가.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방과 후

부모님도 찾아뵙고 인사드렸다.

그 친구 덕분에 쑥맥인 난

미팅이라는 걸 처음으로 해 보았다.


초등 일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을 하는 날

그날도 대단히 추웠고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나를 포함하여 수상을 하는 몇 아이들은

먼 거리에 있는 본교의 방학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태워 주셨다.

비포장길이 울퉁불퉁하고

어찌나 미끄러운지 엉덩이도 아프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도착하니 마침

운동장에서 식이 거행되었다.

본교라서 학생들이 무지 많았다.

난 일학년 우등상을 받게 되어

교장선생님께 상장과 상품을

수상했다.

아버지께서 대견해 하시며 좋아하셨다.

돌아오는 미루나무 끝없는

가로수 길이 눈이 쌓이고

온 세상이 하얗다.

추운 줄도 모르고 난 마냥 뜀박질을 하며

돌아왔다.

몇 채가 있는 관사의 공동

목욕물을 데우는 '범종' 만한

아주 커다란 솥이 있어 

나무를 떼고 물을 데우면

필요한 만큼 서로 물을 떠 갖고 가서

씻곤 하는데 마침 그날이 어서

커다란 대야에 물을 떠와 동생과 난

몸을 녹이고

미소를 잔잔히 띠시며

어머니께서 씻겨 주셨다. 

그때의 상쾌한 기분과 어머니의

고우신 얼굴과 눈 나린 풍경과 자전거를

끌고 오시던 아버지의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훈장이셨던 할아버지를 닮으신 아버지는

필체가 대단히 좋으셨다는데

우리 가족 미완성 호구조사카드를

작성해 놓으신

나의 작은 프로필 비고란에는

'우등상' 받음이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2학년이 되어 새로 지은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시어 경찰직을

그만 두시게 되고 고향 동네로

전학을 왔다.

부족한 자금을 고향 친구 두 분께서

빌려주시어 방앗간을

하게 되셨다.

그 빚을 청산하신 뒤 그 해에

돌아가셨다 하시니

그나마 애써 위로가 되셨을지

야위신 몸으로 대청에서 지인들과

바둑을 두시기도 하시면서도

남겨질 가족을 애석해 하셨을

아버지는 하필 제일 뜨거운

여름 음력 7월 1일 아침

내가 4학년이고 동생이 일학년이었던 때

돌아오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가시던 중

다시 못 오실 길을 가셨다.


그게 싫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길었던 여름 방학이. 

눈물과 땀으로 범벅진

그 뜨거운 여름이...


어린 그 시절에 고향엔 눈이

참 많이도 왔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메밀 묵을

빻아가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추운 캄캄한 밤에 겁도 없이

고소한 묵밥을 사러 다녀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나게 먹던

세 식구의 밝은 표정이 그저 좋았다.

펑펑 내리던 날에 어느 날은 

동네 어귀 들판에 있던 옹달샘에

빨래를 하러 가는 친구를 따라가

쪼물쪼물 조막손은 시리고 아픈데도

호호 불어가며 옷을 씻는 건지 그저 물에

적셔가며 놀았었다.

그 순간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입은 옷까지 다 젖고 얼어 뻣뻣해져서야

어정쩡히 집에 돌아오는데 얼은 옷에

눈이 달라붙어 질질 질 무겁게 끌고 오니

눈사람처럼 되었고

그제서야 픽 쓰러져

그 길로 며칠을 끙끙 앓아 누었다.

그렇게 아프고 손은 그만 동상이 걸리고

어머니께 혼나고서도 

들판에 있는 그 샘 주위로 가 얼음판에서

뒹굴며 겨울을 보냈던

그때가 좋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경비를 모아

더욱 가슴 아픈 여름을 묵묵히 보내고

한계치에 다다른 겨울이 오면

문뜩 나도 모르게 떠나곤 했다.


겨울 산행으로 무주 덕유산을

올라 상고대에 취하고,

눈이 허리까지 쌓인 백암산

정상을 죽을 듯이 오르고 내려와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금질하며, 

얼음축제가 열린 태백산을

스틱도 없이 오르고 눈밭을 뒹굴며

주목에 기대어 올려다 본 하늘은

바다보다 새파랗던 풍광에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믹스 커피를 마시는 그 맛과

비료포대로 썰매를 타며 내려오다

아찔했던 순간들의 희열감,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허우적대며 설악산 계곡과

경포대 바다로 차가움을 맞고

젊은 날을 보냈다.


'겨울 여자'영화를 보고

'장미희'를 좋아하고

겨울 시린 바다가 좋아

'모나코'를 들으며 파도 소리를

듣는다.

'제인 에어'를 읽으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더욱 춥고 외로운 고독을 즐기며

세계 명작에 빠지고

'겨울 왕국'을 보고 '엘사'가

되어도 본다.


느닷 나타난 해군사관학교

생도의 구애 편지 첫 대목도

'찹다'였다.

받아 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늘 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다.

겨울에 만난 연인과 떠난 겨울 송도 바다의

차디찬 인연도 잠시 뜨거운 여름에

밀어내 버린 아픔은 모순의 삶이었다.


그토록 고독해서 더욱 고독하길

소원했고 아픔은 더욱 아픔으로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헤어나지 못해

그러면서도 차가움을 더욱 차갑게

맞으려는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아서

지금 신축년 신축생 1월

벌써 회갑을 맞이한 나는

아직도 그냥 또 그렇게

폭설이 내려 교통마비로 사고와 피해가

급증하는 뉴스에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눈 나린 풍광 사진에 철없이

설렘으로 두 방망이질을 해대고

한파의 극성에도 마음은

이미 떠날 채비를 한다.

모순은 또 모순을 낳는다.


'엄마는 바다를 좋아해서

바닷가에서 살 줄 알았는데

안동에 와서 살 줄 몰랐다'라며

자의든 타의든 내가 염원했던

바다 가까이서 떠 돈 삼십 년

세월에 할머니 품에서 자란

가슴으로 낳은 큰 딸아이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첨언하자면 이 글을 써놓고 휙

겨울 바다를 정신없이 보고

돌아왔더니 머리가 맑아졌다.

캐나다 멀리 사는 나의 아름다운 페친께서

내게 겨울 여자라며

황송하게도 늘 멋진 댓글로 응원

을 잊지 않는 고마운 그녀를 생각하며

먼동이 틀 무렵에서야

꿈나라로 여행한다.



#상주열방센터

#화서파출소

#중동파출소

#범종

#해군사관학교

#영화배우장미희

#팝모나코

#제인에어

#세계명작

#겨울왕국

#무주덕유산

#울진백암산

#태백산

#설악산

#경포대

2 Comments
학리 정병운 2021.01.18 12:49  
지나간 모든 흔적
사랑과 아쉬움의 파노라마
그 바탕 위에 오늘이 있음은
끝없는 감사와 찬미로도 부족한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공감하며 배람합니다
김미숙(려송) 2021.01.20 02:43  
네 고문님 공감 주시고 응원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그리움이네요
늘 건안하시길 바랍니다